영화 <최종병기 활>, 연좌제, 범죄자 인권
카테고리 없음 / / 2023. 2. 7. 22:23

영화 <최종병기 활>, 연좌제, 범죄자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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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최종병기 활>의 줄거리와, 주인공 남이의 인생을 흔든 연좌제, 그리고 범죄자의 인권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영화는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합니다. 당시 최고의 활기술로 나라를 지켜낸 '남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1. 영화 결말 포함한 줄거리

 역모를 꾀하다가 실패한 아버지 최평량은 아들 '남이'와 딸 '자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합니다. 최평량은 아들에게 자신의 활을 쥐어주며 김무선을 찾아가라고 전합니다. 어린 남매는 김무선을 찾아가 그의 도움으로 무선의 집에서 숨어 살게 되었습니다. 남이는 명사수로 성장했습니다. 자인은 김무선의 아들 서군과 혼인을 하게 됩니다. 남이는 글과 무예를 멀리하고 오직 활과 사냥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자신은 역적의 자식이기 때문에 큰 일을 할 수 없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남이는 동생 자인의 혼례식날 떠나기로 합니다. 그러나 혼례식 당일 남이는 청나라 병사들의 침입을 알게 됩니다. 이날이 바로 병자호란이 시작된 날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마을은 쑥대밭이 됩니다. 청나라 군사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공격하고 포로로 만주로 끌고 갑니다. 남이는 자인을 구하기 위해 자인에게로 달려가다 우두머리인 '쥬신타'의 무리와 마주하게 됩니다. 쥬신타는 남이의 활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남이는 쥬신타의 활에 맞아 절벽 아래로 떨어져 버립니다. 다행히 그는 나무에 걸려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그가 마을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마을은 폐허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가 마주한 것은 부모처럼 남매를 키워줬던 김무선의 주검과 자인의 꽃신 한 짝이었습니다. 남이는 포로들이 만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뒤쫓기 시작합니다. 한편 포로로 잡힌 서군의 무리들은 압록강을 건너기 직전에 놓여있었습니다. 서군이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병사들과 전투를 하던 그 순간 남이가 합류하게 됩니다. 마을사람들은 함께 힘을 모아 오랑캐들을 몰아내게 됩니다. 남이는 서군과 함께 자인을 구하러 떠납니다. 남이 일행들은 자인이 잡혀있는 청나라 군사 기지를 급습하였습니다. 남이는 자인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서군에게 자인을 부탁한 남이는 청나라 왕자 도르곤을 홀로 처리한 후 다른 일행들과 빠져나왔습니다. 뒤늦게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쥬신타는 남이의 뒤를 쫓기 시작합니다. 쥬신타의 무리와 남이의 일행들의 계속되는 추격전 끝에 쥬신타와 남이만이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남이와 쥬신타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자인과 서군이 그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남이가 위기에 처하자 자인이 활을 쏴 쥬신타의 말을 명중시킵니다. 쥬신타는 자인을 인질로 삼고 남이를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남이가 신들린 활 기술로 쥬신타를 명중시킵니다. 결과적으로 쥬신타와 남이 모두 목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남이가 목숨을 바쳐 자인을 구한 것입니다. 자인과 서군은 포로로 잡힌 마을 사람들과 함께 다시 한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2. 남이와 자인을 옭메던 연좌제

 조선시대에서 역적의 자식은 숨어 살아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남이와 자인 역시 부친의 친구 김무선 덕분에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남이를 보면 그들의 서글프고 억울한 마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조선후기까지는 범죄자의 3족까지 모두 처벌했습니다. 특히나 역모죄는 나라의 근간을 흔든다고 하여 3족뿐 아니라 범죄자의 주변인들 모두를 처벌했습니다. 남이 남매의 아버지 최평량은 역모로 몰려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최평량은 자신의 자식들이 관군에게 잡히면 어떻게 될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자신을 희생하여 아이들을 도망치게 했습니다. 만약 김무선과 같은 인연이 없었다면 남매는 다른 마을로 도망쳤어도 관군에게 잡혔을 것입니다. 역모죄인의 가족을 숨겨줬다간 처벌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연좌제는 갑오개혁 때 폐지 되었습니다. 이후 헌법이 제정될 때 형법상 자기 책임원칙과 인권을 이유로 연좌제 금지 조항이 명확하게 생겼습니다. 

3. 범죄자의 인권

 범죄가 언론에 보도 될 때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범죄자의 인권'일 것입니다. 대학 시절 교양 교수님께서 한국 사회에서 범죄자의 인권은 일제강점기의 영향이라고 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당시의 범죄자들은 독립운동가였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도 그 영향이 있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하셨습니다. 범죄자의 인권을 이유로 얼굴과 신상을 오래도록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에서야 제한적으로 공개되곤 합니다. 하지만 그 범위가 매우 한정적이어서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형벌역시도 국민 정서와는 아직 많이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한국은 사형제가 있지만 97년을 마지막으로 집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상 사형제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렇게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나라인데 형량이 너무나 작습니다. 같은 죄목으로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사실상의 종신형에 가까운 기간이 판결 나는 데 말입니다. 기존 판결과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시대가 변했고 무엇보다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 판결이 계속되는 것은 재판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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